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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공간들 Vol.4- 프로 관객러 매드해터 영호가 사랑했던 공간 살롱 바다비에 대한 헌사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이

아직까지 건재하게 존재할 수도 있지만,

기억 너머의 소중한 추억이 되어 남아있을 수 있다.


오늘은 홍대 인디씬을 너무 사랑해서

프로 관객러로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을 응원하는 프로 인디러버

'매드해터 영호' 가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지금은 사라져 추억너머의 공간이 되어버린 '살롱 바다비'에 관한 추억을 가져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가 그 공간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바치는 그의 헌사,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쫓아가며

그 공간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읽어나가보는 것을 어떨까?

이 공간을 알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공간을 함께 추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시 한번 이 미천한 지면에

너무 좋은 글을 제공해주신

'매드해터 영호' 님께 진심을 다해 감사의 말씀을 표합니다.

 

1


꿀꺽 꿀꺽 꿀꺽.


“크흐 이 맛이지 맥주는 역시 이렇게 시원해야 한다니까 거기다가 여기 맥주가

진짜 맛있어.”


나랑 N년 지기 친구가 맥주를 들이키더니 말한다. 참 맛있게도 마신다.


“그래 공상온도 사장님이 맥주도 정말 맛난걸로 잘 가져다 놓으신다니까.”


여기는 공상온도 라는 공간이다. 술잘알, 맛잘알, 음잘알 사장님께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카페 겸 펍, 갤러리, 아트 마

켓, 그리고 공연장이다.


“내 말이! 공상온도 사장님 최고야. 이런 공간 만들어주셔서 너무 고맙다니까. 내

가 제일 좋아하는 공연장이야.”


아무래도 나랑 친구는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는 것이 취미다 보니 공상온도도 공

연장으로 인식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는 공연장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다

른 대안공간이기도 해서 특별히 더 좋아한다.


“그래도 너는 바다비가 젤 좋다고 그랬나?”


맥주를 다 마신 친구는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으며 나에게 묻는다.

나도 마침 맥주를 다 마셨기에 새 맥주를 주문하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지금은 사라진 곳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지.”


A


아지트.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

2010년 당시 스무 살이던 나에게 아지트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대학 생활에 충실히 살아갈 뿐이었고

좋아하는 카페도 좋아하던 식당도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생활은 학교, 학원, 집. 그게 전부였다.

대학교에 들어가며 문화생활에 눈을 뜬 나는

정말 닥치는 대로 문화와 예술을 접하기 시작했다.

각종 축제부터 시사회, 연극, 뮤지컬 등등 그 때에 나는 공부도 미친 듯이 했고

노는 건 더 미친 듯이 했다.

그러다 2010년 슈스케를 접하고 장재인이라는 가수를덕질하게 되었고

서서히 인디문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재인씨 트위터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서울에 처음 상경하여 공연을 했던 공연장.살롱 바다비.

그 곳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바다비 네버다이라는 것이 열리고 참여하게 되었다.

자원 활동가를 모집한다. 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당시 덕질에 진심인 편이었던 나였기에 바다비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바다비는 어떤 공간이고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살롱. 커피하우스의 진화된 형태로,

의사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발언 무대를마련해주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교를 펼치며 자유를 누리는 공간.

바다비. 바닷속에 내리는 비.

공간의 운영자이자 시인 우중독보행이 만든 공간으로

누구나 뭐든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보통의 공연장은 이랬다.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이

대관료를 지불하고 공연을 하거나.

공연장의 기획자가 기획을 하고 뮤지션을 섭외를 하거나

아니면 공연장의 오디션을 보고 오픈마이크 무대에 선다던가.


그런데 살롱 바다비는 조금은 달랐다.

물론 공연장의 기획자도 있고 오픈 마이크도 있지만

그 무대가 다른 곳보다 더 낮았다.

공연을 하고 싶으면 실력이나 이름을 넘어서 할 수 있었고

공연의 장르 또한 노래 뿐 만 아니라 연극부터 시낭송까지 정말 다양했다.

인디 아티스트의 인큐베이터였고 살롱이었으며

말 그대로 바다 속에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공간이 문을 닫을 위기라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자원활동가로 신청을 했다.

그 당시 나는 경험도 지식도 없는 스무 살이었기에

지원서에 청소든 포스터부착이든 뭐든 하겠다. 돕고 싶다. 라고 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바다비 네버다이의 자봉단이 되었고 열심히 활동했다.


바다비 네버다이. 바다비는 3개월의 월세가 밀려있었고

심지어 사장님인 우중독 보행은 뇌쪽에 병이 생겨 입원하게 되어

정말 문을 닫을 위기가 되었다.

정말 바다비에게 큰 위기였고

이를 살리고자 바다비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한 달간 기획과 준비를 하고 한 달간 축제는 진행되었다. 그렇다 축제였다.

137팀의 인디뮤지션들이 모였고 9개의 공간에서 릴레이 공연을 진행했다.

이게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수익금은 바다비를 위해서였다.

나는 청소를 하고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홍대 지리를 1도 모르던 당시의 나는

그렇게 홍대의 지리를 라이브클럽들로 익혔다.

인디씬이라는 것을 그렇게 배워 나갔다.

137팀의 뮤지션들,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게 엄청난 팀들이 모여 있지만

그 당시 내가 아는 라인업은 장기하와얼굴들, 장재인, 크라잉넛, 타카피, 요조 정도였다.

다른 공연장들도 처음 가보는 공간들이었고 공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인디씬에 들어가게 되었다.



I


“네! 마법사들이었습니다! 블롸스타!”


바다비 사장님 그러니까 석호형은 무대위의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에게 이런 식으로 꼭 인사했다.

아직까지도 블롸스타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소리가 좋았다.


“얼른 의자 치우고 테이블 깔자구.”


공연이 끝나갈 즈음이면 늘 공연장 한쪽에서는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끝 날때에 맞추어 석호형은 한쪽에서 커다란 솥에 떡볶이 같은 술안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객석을 정리하고 테이블을 깔고 술을 사다가 뒤풀이를 했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관객도 같이.

그 당시에는 원하면 누구나 그렇게 뒤풀이를 함께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공연장에서 공연이 끝난 뮤지션들도 바다비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술판을 벌이고는 했다.

공연수익금은 보통 그 날 뒤풀이에 쓰일 술값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민아 저기 뻗었네 누가 담요 좀 덮어줘!”

“제가 덮어드릴게요!”


그렇게 뒤풀이를 달리다 보면 소파나 무대 위에서 뻗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러면 거기서 그냥 잔다. 담요도 있다.

예전에는 바다비에서 실제로 먹고 자고 살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어라? 집에 다 와가네.”


이상하네 분명 방금전 까지 나도 바다비에서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 동네다. 필름이 끊겼네.

뭔가 재밌다.

이게 청춘이지 뭐 행복하다.

바다비가 계속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바다비는 진짜 내 첫 아지트다.


B


살롱 바다비는 문을 닫게 되었다.

10년을 겨우 넘긴지 1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바다비는 그동안 많은 고난이 있었다.

내가 처음 바다비를 알게된 것도 바다비네버다이,

문닫을 위기에 처한 바다비를 살리기위한 축제였지만

그 전에도 네버다이는 계속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계속 그 위기를 넘어가며

꾸준히 바다비가오랫동안 그 곳에 있기를 바랬지만,

결국 바다비는 문을 닫게 되었다.

바다비 네버다이를 하며 많은 뮤지션이 도움을 주고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뉴스와 언론매체에서도 주목을 받으니

건물주 할머니는 옳다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밀린 월세를 다 갚고 내부 수리를 하고 그 뒤에 올라간 건 수익이 아니라 욕심뿐

이였다.


II


‘무엇이 되어 만날까. 어찌 이별할까..’

바다비의 딸이라는 별명이 있는 모던가야그머 정민아 누나가 마지막 무대를 하

고 있다. 누나의 ‘무엇이되어’는 내가 바다비를 알게되고 누나를 알게 된 후 정말

많은 라이브 공연을 봤던 곡이었다. 그런데 이제 바다비에서는 지금이 마지막이

다. 이제 다시는 누나가 이 곳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도 슬펐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운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눈물이 고였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 생각한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같이불러!’


어느새 민아누나의 눈도 빨개져있었다.

웃고 있는 누나였지만 목소리는 떨려왔다.

가야금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모두의 노래 소리.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름처럼 바닷속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지만 슬픔이 가득 메웠다.



2015.10.14.~18. 5일간 40여팀이 공연을 이어나갔다.

'바다비 잠시만안녕. 바다속에 내리는비' 라는 이름으로.

나는 목요일부터 모든 공연을 내 눈에 담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마지막 공연시리즈의 마지막날 공연.

무대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

관객도 마찬가지. 바다비를 사랑한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의 팬들만 있는게 아니다.

바다비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이 모였다.

관객도 있고 뮤지션도 함께한다.

무대위에 많은 걸 올려 놓은 이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어느새 마지막의 마지막 순서가 왔다.

하이미스터메모리 형님과 레인보우99가 함께 무대에 올라

‘다시 비가 내리네’를 부른다. 바다비가 내리네 라고 가사를 바꿔서.

이윽고 무대에 바다비 사장님이 오른다. 그리고 외친다.


“어~이! 그쪽은 길이 아니야! 어~이!”



이어서 ‘숙취’를 부른다.

레인보우99가 기타를 박살 낸다.

박살 난 기타가 무대위에 나뒹군다.

이때 바다비 사장님이. 우중독보행.. 석호형이.

무대위에 기어오르고 남은 잔해를 잡는다.


“이게 바다비다!”


석호형이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곳에 모두가 울부짖는다.

하이미스터메모리 형님의 노래도,

레인보우99의 기타도 석호형도

그리고 우리 모두 바다속에 내리는 비처럼 한 데 모여 울부짖는다.



“아이고 어떻하냐 영호야 어떻게해야하냐?”

나랑 같이 공연을 보던 형님이 술을 마시며 묻는다. 어쩌면 좋냐고.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무대 위에 흩어진 기타의 잔해처럼

무대 위에 올려놨던 내 추억들을 정리할 뿐이다.

어느새 자정을 넘긴 지 한참이 지났다.

무대를 정리하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테이블을 깔고 술을 마신다.

그러다 누군가 기타를 잡는다.

또 누군가는 드럼에 앉는다.

즉흥적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나도 스틱을 잡고 드럼을 두드려 본다.

석호형은 무대위에 올라 춤을 춘다.

어느새 저기 뒤에서 누군가 불꽃을 터트리고 돌리고 있다. 뮤지션과 관객 같은 그

런 경계는 없다.


여기는 살롱 바다비. 바다 속에 내리는 비.

누구나 하고 싶은 걸 하는 곳이다.



2


꿀꺽 꿀꺽 꿀꺽


“크흐 좀 미지근해 졌지만 그래도 맛있다. 역시 어디서 누구랑 마시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

그렇다 바다비는 주류판매는 없었지만 그래도 위에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

실 때마다 너무나도 맛있었다. 차가운 맥주도 좋지만 어떻게 마시느냐가 제일 중

요한 것이다.


“그래 공상온도가 정말 맥주 마시기 좋은 곳이라니까.”


홍대에는 정말 많은 문화 공간들이 있다. 라이브가 가능한 공간들, 라이브 클럽

들, 카페, 갤러리, 독립 서점 등등등 내가 좋아하는 많은 공간들...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자기만의 색을 보여주고 있는 공간들.


“여기는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 바다비처럼 이 곳도 좋은 공간이고 여기에도 내 추억들이 쌓이고 있으니

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추억에 한 장면이 되어 지는 공간들.

모두가 힘들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겐 힘이 되어주기에

소중하고 또 소중한 공간들.

계속 오래오래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게 그곳에 있기를 바래본다.

나의 마음속에서만큼은 언제나 영원할 바다비처럼.


 

내가 사랑했던 공간이

추억너머의 어딘가로 남겨진다는 거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힘들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 때의 기억은 좋은 추억이 되어

우리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내는 것 처럼.


언젠가 살롱 바다비가

우리 곁에 돌아오기를,

그 때의 추억을 가진 모든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술 한잔 하는

그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친다.


또한, 다시 한 번 미천한 지면을 통해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전해주신 영호님께

진심을 다해 감사인사를 전하며 진짜로 이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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